'F등급'이 사라지는 그날까지 ①

가능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여성들

장연희 | 기사승인 2021/09/14

'F등급'이 사라지는 그날까지 ①

가능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여성들

장연희 | 입력 : 2021/09/14 [12:40]

[씨네리와인드|장연희 리뷰어] 영화는 누구의 것일까? 영화는 세상에 흘러 다니는 이야기를 가공해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매체이다. 그러나 산업이 시작된 지도 100년이 훌쩍 지난 지금, 영화는 주로 남성의 얼굴을 하고 그들의 희로애락을 대변하고 있다. 극장을 가나 TV 앞에 앉으나 별반 다를 것이 없는 현실에서 이제껏 의식하지 못한 채 보아왔던 것들이 어느 순간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세계인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문화 강자 할리우드도 그 사정은 마찬가지다. 2019년 개봉한  「우먼 인 할리우드」 는 전 세계인을 열광케 한 이야기 뒤에 숨겨진 오래된 성차별을 꺼내 보이고 있다. 편견 없는 미디어를 위해, 문화를 바꾸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 목소리를 낸 96명의 이야기를 따라 영화계 내 여성의 자리에 대해 고찰해 보았다.

 

▲ 영화 <우먼 인 할리우드> 포스터     ©마노엔터테인먼트

 

언제까지 왕자를 기다리는 공주가 되어야 할까?

 

「귀여운 여인」 (1990),  프린세스 다이어리」 (2001)와 같은 영화 속 신데렐라와 어떻게 알고 온 것인지 매번 타이밍 좋게 등장한 남성 히어로가 그간 구해준 수십, 수백 명의 여성들.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갈 능력이 부족하거나 스스로의 힘으로 문제를 극복하기 어려워 위험한 상황 속에서도 가만히 앉아 구원자를 기다렸더랬다. 조금씩 강산은 바뀌어 주체성을 가진 캐릭터들도 하나 둘 등장했으나, 오랜 세월 반복되어온 공주님 역할은 여전히 그 자리를 보전하며 남성의 성장, 위기, 용기로 이어지는 서사를 위한 밑거름으로 사용되고 있다. 한편, 서사를 위한 도구 이상의 대상화가 이루어지기도 하는데, 가령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 를 꼽을 수 있겠다. 디카프리오의 신들린 연기에 빨려 들어 가다가도 왜곡된 앵글에 담긴 여성들을 보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던 기억이 있다. “이게, 2010년대 영화 맞는 거지?” 하는 의문이 절로 들었고, 이내 빨리 감기만 계속해서 누를 수밖에 없었다.  둘 중에 하나만 골라, 도구 or 대상그저 한숨만 나오는 선택지가 아닐 수 없다.

 

미디어는 우리의 무의식 속으로 파고든다

 

컴퓨터, TV, 스마트폰을 통해서 그리고 영화관에서도 우리는 어디서든 미디어를 접한다. 자는 시간 빼고는 내내 둘러싸여 있으니 자연히 보는 대로 생각하게 될 수밖에. 그런데 웬걸? 영 좋지 못한 것이 우리의 무의식을 지배한다. 아이들이 보는 만화 영화에는 여자애처럼 굴지 마라며 서로를 조롱하는 일이 부지기수이고, 전체관람가 영화임에도 여성의 의상은 남성보다 더 심한 노출을 하고 있다. 이런 미디어에 지속적으로 노출된다면 아이들은 온갖 평가대 위에 사람을 올리는 것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그뿐만 아니라 영화 속 주요 화자의 80% 이상은 남성이 차지하며, 아이들이 쉽게 롤 모델로 삼게 될 미디어 속 여성의 직업은 아직까지도 제한적이다. 어릴 적부터 지속적으로 노출된 미디어의 힘은 상상 이상이라서 단지 영화와 TV를 시청한 것만으로도 고정관념을 가진 사회 구성원을 배양해내기엔 부족함이 없다. 배우 지나 데이비스(Geena Davis)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If she can see it, she can be it.” 볼 수 있으면 될 수도 있다. 차별 없는 세상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아이들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으니, 편견에 얽매이지 않고 더 큰 꿈을 꾸며 자라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 영화 <히든 피겨스> 스틸컷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CSI>
를 보고 법의학자를 꿈꾸고 

  <그들만의 리그>를 보고 운동하는 소녀들이 늘어났듯이,

  <그레이 아나토미>를 보고서는 의사라는 직업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고

  <히든 피겨스>를 보고 성별과 인종을 극복한 과학자로부터 용기를 얻을 수도 있다.

 또한 <세상을 바꾼 변호인>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나는 반대한다>를 보고 난 뒤에는 그처럼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큰 꿈과 야망을 가질지도 모를 일이다.

 

세상의 반이 여자인데, 영화가 그 반을 배척한다

 

미디어가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왜 남성의 입을 통해 주로 전해질까? 여성은 이야기를 풀어낼 힘과 호소력이 부족하기 때문일까?  우먼 인 할리우드」 를 보고 나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성들에게는 충분한 가능성이 있음에도 수십 년 동안 견고히 만들어온 할리우드의 구조가 그들의 진입을 가로막고 있다. 여성은 여전히 예술가로 인정받지 못하고, 시장은 경험 없는 사람에게 일을 맡기기 꺼려하니 할리우드에는 여성 작가와 감독이 자리를 잡지 못한다. 할리우드에서 이름을 날리는 남성들도 다들 시행착오를 겪었기 때문에 빛을 발할 수 있었던 것임에도, 설명할 수 없는 이유 또는 이유 없는 이유로 인해 새로운 도전 기회는 계속해서 남성에게로 돌아가고 결국 또다시 여성 인력이 설 자리가 없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우먼 인 할리우드」 에 나온 조사 결과는 다음과 같다.

 

  -2018년 흥행작 상위 100편 중 85%는 남성 작가가 집필했고

  -2018년 미국 개봉 영화 상위 250편의 감독 중 92% 또한 남성이며

  -거의 한 세기 동안 오스카 감독상을 받은 여성은 딱 한 명뿐이었다. (2021년 클로이 자오 감독이 두 번째 여성 수상자가 되었다.)

 

▲ 영화 <허트 로커> 스틸컷  © (주)NEW, (주)까멜리아이엔티

 

이런 상황이 영화, 미디어의 발전에 진정으로 도움 되는지는 의문이다. 그저 사람들이 알아야 하는 것은 여성이 메가폰을 잡고 펜을 쥐게 된다고 해서 세상이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며, 단지 여성의 시각으로 여성을 바라보고 여성이 겪고 느끼는 감정을 표현해낼 뿐이라는 사실이다. 지레 겁먹을 필요가 없다.

 

배우 아만들라 스텐버그는 말했다. “다양한 창작자가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어요. 이전에는 하지 못했던 경험들을요”. 영화 역사 약 130, 할리우드 역사 100년 동안 넘칠 만큼 한쪽의 이야기만 들었다. 우리, 이 정도면 들을 만큼 듣지 않았을까? 이제부터는 조금 더 폭넓은 경험을 할 수 있길 바란다.

 

[기사 ‘F등급’이 사라지는 그날까지 ② 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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